가브리엘 데스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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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포르와 뵈르네유 공작부인이자 몬세유 후작부인 가브리엘 데스트레(프랑스어: Gabrielle d'Estrées, Duchess of Beaufort and Verneuil, Marchioness of Monceaux, 1571년? ~ 1599년 4월 10일)은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의 애첩이다.

생애[편집]

가브리엘이 앙리를 만났을 당시, 앙리에게는 이미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라는 아내가 있었지만 부부의 사이는 대단히 나빴다. 가브리엘이 앙리의 애첩이 된 것은 프랑스 궁정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앙리는 가브리엘을 어디에나 대동하고 다녔다. 그녀는 앙리의 좋은 조언자였으며, 앙리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1593년 7월 25일 앙리는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긴 내전을 끝내고 파리에 입성할 수 있었다. 대관식을 마친 앙리는 가브리엘의 결혼을 무효로 하였다. 이듬해 두 사람 사이의 첫 번째 아이인 세자르가 태어났고, 앙리는 그를 자신의 아들로 인지하였다. 가브리엘에게는 몽소 후작 부인의 지위가 주어졌다. 이후에도 가브리엘은 두 명의 아이를 더 낳았고 앙리에게 있어서 사실상의 아내였다. 그녀는 1597년 보포르 공작 부인이 되었다.

1599년 앙리는 가브리엘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에 마르그리트와의 혼인 무효를 신청했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이내 중병에 걸렸고 그 소식이 퐁텐블로 궁전의 앙리에게 전해졌을 때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가브리엘에게로 향하는 도중에 앙리는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접했고 깊이 상심한 앙리는 상복을 입고 그녀를 추도했다. 가브리엘의 장례는 왕비의 대우로 치러졌다.

자녀[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