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 히데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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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 히데유키(일본어: 蒲生秀行, 1583년 ~ 1612년 6월 13일)는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에도 시대다이묘이다. 어릴적 이름은 쓰루치요(鶴千代)이고, 다른 이름은 히데타카(秀隆)이며, 통칭 도자부로(藤三郎)이다. 관위는 종4위하, 히다노카미, 시종이다.

덴쇼 11년, 아이즈 번가모 우지사토(蒲生氏郷)의 적자로 태어났다. 형 가모 우지토시가 있었으나, 히데유키가 태어나기 전에 폐적되었다. 분로쿠 4년(1595년), 아버지 우지사토가 급사하자 가문을 승계했다. 그런데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는 히데유키로부터 아이즈 영지를 거두고 새로이 오미노쿠니 2만 석 영지를 부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간파쿠 도요토미 히데쓰구가 히데유키의 영지 상속을 인정하여, 아이즈 번 92만 석 영지를 받게 되었다. 이 일은 히데쓰구 사건의 원인 중 하나가 되는데, 결국 히데요시는 히데유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딸 후리히메를 정실로 맞아들이는 것을 조건으로 후계 계승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아직 젊은 나이로 아버지만한 기량이 없었던 히데유키는 집안을 잘 통솔하지 못했고, 중신들 간의 대립을 초래하여 가모 소동이 발생하여, 게이초 3년(1598년),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우쓰노미야 번 12만 석으로 삭감 전봉되었다. 게이초 5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에 가담하여 우쓰노미야에서 우에스기 가게카쓰(上杉景勝)를 견제하였다. 그 공로로 전투 이후 아이즈 번으로 복귀하여 60만 석을 수여받았다. 또 이에야스의 딸과 혼인했기 때문에 도쿠가와 가문의 사람으로 중용되었다. 하지만 아이즈 지진을 겪는 등 고심하다가 게이초 17년, 3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맏아들 다다사토가 그 뒤를 이었다.

전 임
가모 우지사토
제2대 아이즈 번 번주 (가모 가문)
1595년 ~ 1598년
후 임
우에스기 가게카쓰
전 임
없음
우쓰노미야 번 번주 (가모 가문)
1598년 ~ 1601년
후 임
오쿠다이라 이에마사
전 임
우에스기 가게카쓰
제1대 아이즈 번 번주 (가모 가문)
1601년 ~ 1612년
후 임
가모 다다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