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 가타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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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 가타히데(蒲生賢秀, 덴분(天文) 3년(1534년)-덴쇼(天正) 12년(1584년))는 센고쿠 시대의 무장이다. 롯카쿠(六角)가문의 가신 가모 사다히데(蒲生定秀)의 아들이다. 아내는 고토 타카토요(後藤賢豊)의 여동생이며, 아들로 가모 우지사토(蒲生氏郷)를 두었다.

생애[편집]

오미(近江)지방의 히노성(日野城) 성주로, 처음에는 롯카쿠 가문을 섬겼다. 1563년, 롯카쿠 요시하루가 칸논지성(観音寺城)에서 가문내의 중신이었던 고토 타카토요(가타히데의 처남)를 암살하자, 이에 충격을 받은 다른 가신들이 요시하루와 아버지 요시카타를 칸논지성(롯카쿠 가문의 본거지)에서 쫓아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가타히데가 아버지 사다히데와 함께 이 사건을 중재하여 롯카쿠 부자를 다시 칸논지 성으로 돌아가게 했다. 또 롯카쿠 가문의 횡포를 막기 위해 롯카쿠 가문의 권력을 제한하는 <롯카쿠 가문법>이 제정되자 가타히데는 이에 서명했다. 다음 해에 롯카쿠 가문이 오다 노부나가에게 멸망당하자, 가타히데는 아들 츠루치요(훗날의 우지사토를 노부나가에게 인질로 보내고 신하가 되었다. 노부나가는 청렴한 가타히데를 깊이 신뢰하여, 자신이 아즈치 성(安土城;노부나가의 본거지)를 비울 때 아즈치 성을 지키는 임무를 카타히데에게 맡겼다.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本能寺)에서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주살당하자, 가타히데는 노부나가의 처자식을 보호하였고, 미츠히데와 싸우기 위해 히노 성에서 농성했다. 미츠히데는 이례적인 조건으로 가타히데를 포섭하려고 하였으나, 가타히데는 ‘노부나가에게 입은 은혜를 잊을 수는 없다’며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 일로 인해 ‘히노의 완고한 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가타히데는 아즈치 성에 있던 막대한 재물을 그대로 놔둔 채 퇴각했는데, 이것은 아케치 군에게 그 재물들을 그대로 내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행동이었다. 아케치 군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가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하여, 그를 소심한 자 혹은 겁쟁이라고 불렀던 사람들도 있었다. 2년 후인 1584년 사망했다. 향년 51세. 맏아들인 우지사토가 뒤를 이었다.